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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원 용주사..궁평항

klcyoh 2009. 1. 4. 21: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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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부 고속도로에서 기흥 톨게이트로 나와 모임이 있는 집으로  가는

 저녁 길에 용주사란  절 안내 표지판이 보여  다음 날 아침 들러보니

상당히 규모가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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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    치 : 경기 화성시 태안읍 송산리 188번지 
홈페이지 :  www.yongjoosa.or.kr 
관 리 소 : 용주사 (031-234-0040) 
개    요 : 융건릉을 빠져 나오면 1.7km지점에 숲으로 둘러싸인 용주사가 있다. 
           행정구역상으론 태안읍 송산리지만 융건릉을 모신 화산 뒤쪽인 동쪽기슭이다. 
           이곳엔 본디 
           신라 문성왕 16년(854)에 염거화상이 창건한 갈양사가 있었다.
           고려 광종21년(970)에는 우리나라에서 최초로 수륙재를 개설하는 등 
          청정하고 이름 높은 도량이었으나 병자호란때 소
           실된 후 폐사가 되었으나 정조가 아버지 사도세자의 능을 화산으로 옮기면서 
          절을 다시 일으켜 원찰로 삼았고 낙성식날 밤 정조가 꿈을 꾸니 용(龍)이 여의주를 물고 승천하여 절이
           름을 용주사(龍珠寺)라 했다고 전한다.                                    
           정조는 용주사를 중창할 때 부모은중경(父母恩重經)을 목판에  새겨 보존하도록 명을 내리
           고 당대 제일의 화가 김홍도에게 맡겨 아름답게 꾸미도록 했다. 50여 목판과 함께  대웅전 
           옆 잔디밭에는 10개항에 이르는 부모은중경을 새긴 탑비가 우뚝 서 있다.
           대웅전 후불탱화는 김홍도의 지휘로 그려진 걸작이고 정조대왕이 심었다는 대웅전 앞 회양
           목은 수령이 무려 200여년이 넘는 천연기념물 제264호이다.       
           범종각의 동종도 상원사 동종, 국립경주박물관의 에밀레종 등과 더불어 손꼽히는 걸작이고 
           역시 국보 제120호이다.        
 주요문화재 : 1) 용주사 범종(국보 제120호)                             
             2) 회양나무(천연기념물 제264호)                          
             3) 금동향로(경기도 유형문화재 제11호)                     
             4) 청동향로(경기도 유형문화재 제12호)                    
             5) 상량문  (경기도 유형문화재 제13호)                     
             6) 전적수사본(경기도 유형문화재 제14호)                    
             7) 병풍(경기도 유형문화재 제15호)                    
             8) 대웅전후불탱화(경기도 유형문화재 제16호)                   
             9) 불설부모은중경판(경기도 유형문화재 제17호)                   
  주변관광지 : 화성8경- 1)융건백설(태안읍 안녕리), 2)용주범종(태안읍 송산리) 
                      3)제부모세(서신면 제부리), 4)궁평낙조(서신면 궁평리) 
                      5)남양황라(장안면 수촌리-우정면 이화리)         
                      6)입파홍암(우정면 국화리), 7)제암만세(향남면 제암리) 
                      8)남양성지(남양면 남양리)  

일제강점기 때는 31본산()의 하나였는데, 이곳에는 원래 854년

(신라 문성왕 16)에 세운 갈양사()가 있었다. 952년(고려 광종 3)

에 병란으로 소실된 것을 조선 제22대 정조()가 부친 장헌세자()의

능인 현륭원()을 화산으로 옮긴 후, 1790년 갈양사

자리에 능사()로서 용주사를 세우고 부친의 명복을 빌었다.

당시 이 사찰을 세우기 위하여 전국에서 시주 8만 7천 냥을

거두어 보경()으로 하여금 4년간의 공사 끝에 완공하게 하였는데,

낙성식 전날 밤 용이 여의주를 물고 승천하는 꿈을 꾸고

용주사라 부르게 되었다고 전한다.(그런 대역사를 하는데 이름이

그때까지 지어 지지 않고

낙성식 전날 이름이 만들어 졌다? 드라마틱해서 멋지다.)

창사()와 동시에

팔로도승원()을 두어 전국의 사찰을 통제하였으며,

보경에게는 도총섭()의 칭호를 주어 이 절을 주재하게 하였다.

경내에는 이 절의 전신인 갈양사의 유물인 7층의 석조사리탑과

6개의 돌기둥으로 지탱하고 있는 천보루()가 있는데,

그 안에 들어서면 대웅보전(殿)과 석가삼존불()이 있다.

그 뒤쪽의 후불탱화() 역시 석가와 여러 보살 및 10대 제자상들인데,

이를 김홍도()의 그림이라고도 하나 확실한 근거는 없다.

이 밖에 당우로는 시방칠등각()·호성전(殿

독성각(명부전(殿) 등이 있다.

주요문화재로는 국보 제120호인 용주사 범종()이 있으며,

정조가 이 절을 창건할 때 효심에서 발원(),

보경을 시켜 제작한 《불설부모은중경판()》이 있다.

 

겨울 나무의 잔가지가 아름답다.

 

 

 

 

 

 

 

 

 

 

 

 

종이 2개가 있는데 제법 큰전각에 있는 이 종은 별다른 표기가 없다.

제발 종에 동전을 던지지 말라는 글귀는 북에도 다른종에도 붙어있다.

(그래서 나는 아주 작은 돌만 던져 주위 사람과 종소리와 북소리를 들었다.)

 

 

 스님들이 회의가 끝났는지 가사를 옆에끼고 우르르 나오시며 어떤 스님은

헨드폰의 메시지를 확인 하신다.

 

 

 

 난 내 기준으로 문화재를 본다. 같은 시절 내가 이것이 주는 종의 공명과 이 양각의 새김, 무엇보다

이 종을 걸어 놓을 저 용고리와 걸쇠등을 만들수 있을 까하고 , 그리고 엄두가 안되면

음 정말 아름답고 정교하다라고 느낀다.

 

 저 절의 한모퉁이에 자리잡고 있는 곧고 굵은 나무 하나는 궁궐의 지름과는 다르지만

예사롭지 않게 보인다.

 

 

 

 

사진을 올리다 문득 궁궐과 절은 왜 옛날 건축 양식이면서도 우리에게 여유롭고 아름답게 보이나

생각하니 그 공간의 풍부함과 정원의 꾸밈이 화려하지도 않으면서  많은 높은 나무와 얕은

나무의 조화가 잘이루어져 그런것 같다.

 

 

 

 

 

 

 

 

 

 

 용주사를 나서 근처에 사는 다른 일행이 기다리는 궁평항으로 방향을 잡았다.

화성 방조제는 그 길이가 생각 이상으로 길어 장관이었다.

 

 

 

 

 

 망둥이가 제법 크다.

 

 

 대단한 만담과 진행 박력있는 진행이 이채롭다.

 

 

 밑의 회집에서 회를 주문하면 이곳의 자리를 안내하여 주는데 야채양념이

두사람분 5천원이며 매운탕은 3인분 1만원의 요리값을 별도로 내야 하는데 회가 나오기 전

회로 만든 조개류와 익은 소라등 많은 먹을거리를 주는데 다 먹지 못하고 나왔다.

 

 

 

 

 

 

 

 

 

 

 

 

빠진 상태의 물이지만 비교적 맑다. 

 소리 소문 없이 막아진것 아닌가 처음 들어 보는데 끝이 안보인다.

토지의 용도 변경으로 인한 대금을 모아

토지공사에서 지은 것이라고 옆 지인이 말해 주었다.

 

 

화성 갯벌 평야라고 이름 붙여도 좋을 정도 !! 넓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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