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10.24
- 이용
어린이를 칭하는 우리말로 현대에는 아해로 발음 한다고 하는데 우리의 전통 아이들 놀이감이 사라지지 않도록
수집 보관 전시 체험을 하는 곳이라고 합니다. 업무차 근처에 들렸다가 바로 옆에 있는것을 보고 들렸는데
규모는 작지만 감동을 받고 나왔습니다.
현대는 아이가 아이답게 못노는 사회가 되었고 그게 당연합니다.
좋은 비용을 지불하면 질 좋은 학원에서 자신감과 ,인성, 사회성을 길러서 배출 하는 시대이고
품격있게 사회에 적응하는데 뭐라 할 수 없습니다.
지금은 사라져 버렸지만 우리때는 참으로 많은 놀이가 있었습니다.
술래잡기 하다 도저히 못찿으면 못찼겠다 꾀꼬리하면 어디에 숨어 있었는지 나타나서 다시 술레를 만들고
어떤애들은 시장가는 엄마 따라가버려 찻기는 커녕 놀이가 파하는경우가 있기도 했습니다.
다방구란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나 술레잡기처럼 장소 한곳을 정해 편을 가르고
술레는 도망 다니는 애들을 손으로 치면
정해진 장소에 먼저 잡힌 애들하고 길게 붙어 있어야 하고 ,
술레가 미쳐 잡지 못한 애들은 붙잡힌 애들의 손바닥을 쳐서 해방 시켜주는 놀이
도 했습니다.
누가 약속한것도 아닌데 구슬치기는 손이 꽁꽁 얼어터지는
겨울에 저절로 시작되고 팽이치기(이중 찍기는 돌아가고 있는 팽이의 윗면을 찍는것이고 ,
팽이를 던져 손바닥에 올리는것처럼 고난도의 기술입니다.)
딱지 시기 (소위가 아주 높은 특정 계급도 잡습니다.)
지금 생각해도 이해가 되지 않는데 해마다 특정 시기가 되면 누가 시키지 않아도 그 계절의 놀이가
저절로 시작되었는데 ,예전 아이들의 동요로 나라의 흥망도 짐작 할 수 있었다는게 거짓은 아닌것 같습니다.
지금 장기 두는 아이들이 있을까요? 궁금해 집니다.
이것도 어릴적 일정시기까지는 까지는 잘 하던 놀이 였습니다.
추운 겨울 이불하나에 옹기종기 모여 발들을 붙이고 한다리 두다리 열두다리 이땅 저땅제비땅하던 기억도 납니다.
88올림픽때 이걸 재현 했었습니다. 이것도 흔한 놀이 였습니다.
그렇게 따지면 굴뚝~~ 하면서 징을 치고 검뎅이로 막힌 굴뚝 청소해주던 사람들도 있었고
엿장수는 어찌 그리 많았는지요 . 엿도 없어지면서 강냉이로 대신 주면서 사라졌죠.
구슬치기는 양쪽에 선을긋고 가운데 삼각형을 만들고 각자 몇개씩 내놓은것을 삼각형안에 넣고 맞춰서
밖으로 밀어 내는것으로
진행자의 구슬이 그안에 들어가면 아웃되기도 하고 깔패기라고 해서 찍어서 해도 되는가 사전 정하였고
봄놀이라고 해서 5개의구멍을 파서 순서대로 구멍안에 들어가서 정해진 봄 수를 돌면 승리하는 게임이 었습니다.
좋은 썰매는 스케이트가 못쓰게 되어 날을 떼네고 밑에 붙인게 최상급 이었습니다.
비석치기 게임이 없는 것이 아쉽습니다. 1단계 멀리 금에 세워져 있는 상대의 비석을 던져서
쓰러 트리는 것부터 이후 머리에 비석을 이고 세워진 상대의 비석을 쓰러트리는게 마지막 단계였고
이걸 마당에 사각형에 X를 굿고 상하단에 덧붙인 2단의 칸이 있는
표를 만들어 몸과 함께 움직이면서 하는것도 있었습니다.
공기놀이와 비석치기의 최상품 재료는 깨진 기왓장이었는데 얼마나 곱게 갈리는지 모먕 만들기 좋았습니다.
잣치기는 작은 나무를 연필 앞쪽의 뽀쪽한 모양으로 양쪽을 깍고 그걸 큰 막대로 때려 띄워서 멀리 보내는 게임으로
이거 놀이의 백미 였습니다.
띄워서 탹 쳐서 멀리보내고 때린 막대의 길이로 자기가 가늠한 잣수를 이야기 하고 술레가 승복하면 되는데
승복하지 않으면
실제로 제어서 부족하면 때린 사람은 술레가 되는겁니다. 그리고 공중에서 한번더 때리면 2까이가 되고
이건 길이를 2배로 친 효과가 있고 한번 더 칠수 있는 자격을 주는데 나중 전문가가 되면 한
6번 정도 때리다가 날려 버립니다.
우리 마당에서 치면 청파초등학교까지 끌고 갔으니까요 (그땐 그 거리가 엄청난 거리였는데 지금보면
...50M정도 되네요) 군명 고등학교 (지금의 환일) 철봉 넘기 하다 아차 싶게 떨어찔뻔해서 평생 휴우증이 남았는데
얼마전에 가서보니 제 머리 높이더라구요)
그땐 공마당이라는 마당도 있었고 마굿간도 있고 무당집도 있었습니다.
그렇게 사심 없이 놀던 아디들이 다 어디 갔는지 궁금하네요
사심이라고 적고 보니 우스워 먹던 음식이 튀어 나왔습니다.
무척이나 힘든 고난도의 팽이 돌리기로 기억됩니다.
예전에는 팽이 나무와 팽이의 중심축이 되는 총알을 별도로 판매 했었고
이걸 팽이에 박고 돌려보면서 분필을 대어 분필 가루가 묻는쪽을 쳐서 중심을 잡았습니다.
팽이 게임은 오래 돌리기와 찍기가 있는데 먼저 쓰러진 팽이의 주인이 먼저 던지고
팽이 총알에 팽이 줄을 대어 박치기를 해서 먼저 쓰러지는 쪽이 지는 게임 있어고
찍기는 경륜이 붙어 노련한 선수끼리 했었고
우리사이의 전설은 "준철이 형이 혜식이 팽이를 찍어 팽이가 반조각 났데" 하는 이야기 였습니다.
돌팽이는 우리 동네 없었기에 패스 합니다. 저는 만리동에서 태어나서 서울 언저리라 금수저 비슷한거 아닐까요?
오전 오후해서 16반까지 인가 있던 시절이니까요
모야 지구축이 기율지도 않고 곧게 서 있는데 중국산 아닌가?
아이를 태우고 다녔던 기구로 지금의 유모차 역활을 하는 것인데
이걸 만든 아버지와 어머니를 생각하니 참 감동 스럽습니다.
태항아리입니다. 우리 어릴적 이빨을 뽑으면 지붕위로 던지고 새이빨 달라고 했지요
"그렇게 해서 과학적으로 왜 새 이빨이 나와"가 아니라 우리 부모님의 사랑이었습니다.
호박도 둥그렇게 올라가 있고 달빛도 그렇게 흐뭇한 지붕위에 말입니다.
이걸 부모님들은 자식들을 위해서 무슨일이 있어도 꼭해야 하는걸로 알았습니다. 그래야 실잡으면 수명길어지고
마이크 잡으면 가수되고 마우스 잡으면 벤처기업 사장되라고 ....
배냇저고리 입니다. 태어나서 처음 입는 옷이지요 .
자신의 엄마가 엄마라는것은 뭘로 확신 하는지요?
봤습니까? 믿을지어다 ????
다리 밑에서 주어왔다는 말로 애들의 눈믈을 짜내는거는 자신의 정체성을 찿아 주는 것으로 죽을때까지 자기 엄마가
엄마라는걸 의심하지 않게 하는겁니다.
예전에는 백일 잔치도 있었습니다. 의학이 발달되지 않아 하도(ㅍㅍㅍ 너무나) 수명이 짧아서 이고
한해가 되는 돌 잔치는 지금도 이어지는데 이건 더큰 잔치입니다.
우리들은 이렇게 못배운 부모 밑에서 이런 과정을 겪으면서 이렇게 늙었습니다.
나를 찿는것. 이건 함께하는 놀이에서 배울수 있을것 같습니다.
추억은 진향 향기를 내뿝습니다. 이건 시기가 되야 맡을 수 있는것으로
유한의 또다른 깊이 같습니다.
잼잼 ,곤지곤지 , 불무야 불무야 ~
땅따먹기!!이것 말안하고 지나갔슴 섭 할뻔 했습니다. 동네 마당의 아주 큰부분을 네모로 그리고
처음 자신의영토는 엄지 손톱 만하게 그리는데 엄지손톱만한 납작한 작은 돌맹이로
엄지만한 자기 공간을 표시하고 이걸 손으로 쳐서 3번안에 자기 공간안으로 돌아오면 자기땅이되는 겁니다.
이렇게 하다 상대의 뽀쪽한 땅을 가로 질러 잘라서 자기 영토안에 들어오면 상대의 영토의 자기 땅이 되는 게임인데
나중 움직일 공간이 없어 정산해서 자기 땅이 넓으면 승자가 되는 게임입니다. (오재미나 피구도 마찬가지 이지만
금 밟으면 죽습니다.우리 시대에 금은 약속된 금기 입니다. )
균형입니다. 서로 약속하고 납득할 만한 크기가 되면 자동으로 우리때는 게임이 진행 되었고 한번도
불합리하다고 싸우는 일도 없던 시절이었습니다. 그때가 옳다고 이야기 하는것이 아니라
스스로에게 진지하게 충실했다는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