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행복한 이야기 -/북한산 산행

북한산 국립공원64봉= 영봉,영덕사,도선사

klcyoh 2009. 9. 27. 10: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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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9월 26일 영봉

지하철 4호선에서 쌍문역에 내려 2번 출구 쪽으로 나와 중앙선에 있는 버스 정류소로 건너가

130번 버스를 타고 종점 한 정거장 전에 내려 좌측 육모정길로 들어 서면된다.

(종점과 한 정거장 사이는 100m도 안된다.)

이도 인터넷 검색에서 찿은  훼미리랜드 가는  길은 지하철 출구에서 부터

 몇번으로 나가야하는지 처음 부터 벽에 딪쳤고 정류소 표지판에는

훼미리 랜드는 단 한개의 표시도 없어

나름 또 길 찿느라 애를 먹었다.  육모정 통제소의 주차 시설은 없지만 올라가는

모든 길이 주차가 가능하였고 었고 비교적 넉넉 하였다.

 

 입구에서 바라본 인수봉 .

  밤송이가 벌어져  떨어진 밤이 길가에 많다.

아침에 어제 주어온 밤을 삶아 먹으면서 정현엄마가

그 산에 다람쥐가 그렇게 많은 이유를 알았다고 나름대로 많이 생각하여 발견한듯 나를 부른다.

"산에 밤이 많아서 그래요" "오 대단한 발견이라고 하자

 내 말의 진의를 깨닫고는 눈물까지 흘리며 웃는다.

 

 육모정 길 들어서는 오크밸리 카페의 창가가 예쁘다.

 누군가 놓았을 작은 기원들의  쌓아 올림이 조용한 모습으로 햇살을 받고 있다.

 용덕사에서

 

 

 

 스모그로 시계가 선명하지 않아도 오봉 능선이 감탄스럽게 시원하다.

 

 

 

 구절초가 산길에 많이 눈에 띈다.

 코끼리 바위

 가슴 한 가득히 자연스레이 숨이 들이켜 지며  벌써 가을이라는 자조와 감탄이 절로 나온다.

 능선의 고사목들

 날은 더워 땀을 많이 흘렸지만  시원한 바람으로  갈증이 오지 않아 가져간 물 2통이 그대로남았다.

바람 부는 사막에서는 수통에 물이든 체로 탈수증으로 사망한다고 하는데  같은 날씨이다.

 

 

 작은 봉우리 봉우리 이어지는 능선이 아름답다.

 

 암벽하는 분들의 신호 교환하는 소리로  산이 시끄럽다.

 

 하루재를 넘어 도선사를 들렸다. 도선사에서 영봉가는 길은 직선 코스로 가장 빠르지만

가파르며  숲에 가려진 골짜기이라 주위의 경치는 감상 할 수 없는 단점이 있다.

 

 

 도선사 입구의 개나리

 

 

 

 

 

 

 산행 중 숲과 같이 있는 절은 어찌 그리 운치가 있는지

 반야심경 한 귀절 기억하지 못해도

이왕이면 시간을 내어 들르는 곳이 되었는데

요사이 절은 돌과 용과  티벳의 절을 보는 듯한 조금 더 원색으로 치장 되고 있는 느낌이다.

 

 

 

 

 

 

 신자들은 어디서나 작은 불상이라도 보이면 조용히 합장을 하는데  모습이 고요하여 아름답다.

 참선 및 공부 하는곳

 

 노약자 장애인용 엘리베이터

 

 

 

 저배는 어디로 가는 배일까....안에서는 고인을 기리는 예불을 하는데 등산객은 무심하게 지나간다. (어 정현엄마네...)

 

 

 

 도선사 입구에는 도선사에서 등산객들을 위해 운영하는 듯한 버스가 주차장까지

내려가는데 500원이고 비교적 자주 오는 택시는 합승으로 무조건 1인당 \1,000원이다.

산행 후 걸어 가기에는 그리 짧지 않은 길이다.

 

가는 길에 들른 종로에 위치한  조계사 마당 안의 탑 

 

 

 북한산에는 암자6에 사찰 38개가 있고 신축하는 사찰도 있다.

은마 아파트 단일 상가에는 교회가 13개가 있다고 하였던가

이토록 많은 수에도 불구하고

신을 발견하지 못하는 인생은 얼마나 건조 할까 생각이 든다.

 

목회자 드루먼드

그 순간 인간 존재가 당면하는 가장 큰 질문은

 "얼마나 열심히 믿었는가"가 아니라 "얼마나 사랑했는가"입니다.

 종교의 궁극적 질문은 종교에 관한 것이 아니라 사랑에 관한 것입니다.

내가 무엇을 했느냐, 무엇을 믿었느냐, 무엇을 성취 했느냐가 아니라.

살아가면서 얼마나 사랑에 인색했느냐는 것입니다. 

저지른 죄에 대해서는 추궁당하지 않읍니다.

심판의 자리에서 헤아리는 것은 우리가 행한 잘못이 아니라,

행하지 않은 선 입니다. 어찌 그러지 않을 수 있을까요.

사랑을 내 안에만 가두어 두는 것은 그리스도의 영혼을 부정한 것이고,

우리가 진정 그를 알지 못했고,

그가 우리에게 베푼 사랑이 무의미했다는 증거이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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