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08.14
통영에 처음 들어선후 지나가다가 정보 없이 들린곳으로 이때까지 통영에 4박5일 머무르면서 길을 잃어 버리거나
어디를 가려고 하면 어김없이 나타나는 중심지라는것을 몰랐었다.
우리가족은 강화에서 길만 잊어버리면 나타나는 옥토기센터라고하며 웃곤 하였고
가는 날이 장날이라 12~16일까지 입장료가 무료이다.
삼도수군통제영은 충청, 전라, 경상도의 삼도수군을 총괄하는 본영으로
1604년(선조 37년)에 창건되었고,
1895년(고종 32년) 갑오개혁 때 각 도의 병영과 수영이 없어질 때까지
조선 수군의 총본부였던
곳이라고 한다.
일제강점기에 두레등을 없애려하던 방식대로 자기네들에게 가장 치욕적인 패배를 안겨주었고 전세계 해전에서 유래를 찿기 힘든 이순신에 대한 흔적을 없애기 위하여 이곳 통제영의 관아들을 없애고
그 자리에 학교와 법원, 검찰청, 세무서 등이 들어서며
민족정기 말살정책이 펼쳐졌다.
그러던 삼도수군통제영이 118년만에 복원되었다.
이 복원은 통제영 터에 세워진 인근 학교들을 이전시킨 후
백화당, 12공방 등 주요 관아 30여동과 부속시설, 서포루 및 성곽 등을 2000년부터 2013년까지 13년간에 걸쳐 복원했다고 한다.
통영이란 지명은 통제영에서 나왔다고 한다.
사적 제402호 통영 삼도수군통제영 설명으로
최초의 통제영은 제1대 수군통제사인 전라좌수사 이순신 장군이 한산도에 설치했던 본부이며
이후 290여년간 조선 수군의 총본부였던 곳이 이곳 통영 삼도수군통제영이다.
국보 제305호
세병관은 조선 선조 당시 이경준(李慶濬) 제6대 통제사가
두릉포에서 통제영을 이곳으로 옮겨 완공한 통제영의 중심건물이다.
이 건물은 창건 후 약 290년 동안 3도(경상·전라·충청도) 수군을 총 지휘했던 곳으로
그 후 몇 차례의 보수를 거치긴 했지만
지금도 건물에 일부 가려지긴 하였어도 멀리 남해를 바라보며 당시의 위용을 자랑하고 있는 건물 중 최고의
건물이다.
앞면 9칸·옆면 5칸 규모의 웅장한 건물로,
지붕은 옆면이 여덟 팔(八)자 모양인 팔작지붕으로 꾸몄다.
건물 내부 바닥에는 우물마루를 깔았는데,
중앙 뒷면에 약 45㎝ 정도 높은 단을 설치하여
궐패(闕牌)를 모시는 공간을 마련하였다.
그리고 그 위로 홍살을 세웠고,
후면 내진주열 중방 하부에는 머름을 설치하여 분합문을 달고
중방 위로는 판벽으로 마감하여 무인도(武人圖)를 그렸으며
천장은 소란반자를 설치하였다.
세병관은 17세기초에 건립된 목조단층 건물로
경복궁경회루(국보 제224호), 여수 진남관(국보 제304호)과 더불어
우리나라에서 가장 규모가 큰 건물에 속하고,
여수 진남관과 더불어 그 역사성과 학술적·예술적 가치가 충분하다.
(출처 : 문화재청)
중앙 뒷면에 약 45㎝ 정도의 높은 단을 설치하여 궐패(闕牌)를 모시는 공간을 마련한 세병관(국보 제305호)
055-650-4590
경남 통영시 문화동 6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