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09.21
원당 종마 목장의 좌측으로 담을 같이 하고 있는 서삼릉으로
서울에 있었으면 한번은 버스 표지판을 보았거나 어릴적소풍때 가서 보았겠지만 기억이 가물한 곳일것이다.
24세 이하는 무료이고 일반인은 1천원인 매표를 하고 내부로 들어가면
작은 사거리 흙길로 잘 조성이 되어 있다.
좌로는 효창원 의령원 방향이며
직진으로는 예릉 이며 그리고 우측으로는 희릉으로 가는 방향 이다.
잡풀도 들풀도 군락을 이루면 이처럼 아름다운 법이다.
계속 되는 방수 작업아니라도 지칠만도 한데 (정현이는 오늘은 같이 할수 없다고 잠만 잔다고 연락이 왔다) 무척이나 즐겁다.
홍살문과 보도의 격이 잘 갖추어진 왕릉의 전통적인 모습이다.
왕릉은 죽은 왕의 공간이며
현재 권력의 정점에 있는 것이 왕이지만,
유교의 효(孝) 사상이 지배하고 있던 조선시대에는
왕의 조상이 묻힌 곳이기 때문에 왕도 이곳에서는 최고 권력자의 자리를 왕릉의 주인에게 양보하게 되는 곳으로
중국의 진시황이 사후에도 황제의 권력을 유지할 수 있는 무덤을 만들었던 것처럼,
왕릉은 그 자체로 왕의 권위를 인정받고 있는 곳이다.
그런 이유 때문인지 왕릉의 구조도 궁궐과 비슷한 점이 더러 나타나고 있는데 왕비의 릉임에도 불구하고
그제 다녀온 신라 마지막 경순왕의 묘에 비해
정확한 격식을 갖추고 있다
일반적으로 왕릉의 입구에는 재실(齋室)이 있으며
이는 왕릉의 관리 사무소이며,
과거에는 왕의 무덤을 지키는 능참봉이 근무하던 곳이다.
이곳의 희릉은 조선 제 11대 중종의 제 1계비 장경왕후 윤씨의 능이다
장경왕후는(1491~1515)는 파원부원군 윤여필의 딸이다
1506년에중종의 후궁인 숙의로 책봉 되었으나
정 비인 단경왕후 신씨가 폐위되자
1507년에 왕비로 책봉 되었다
1515년에 세자인 인종을 낳은 후 산후병으로 인하여
경복궁 별전에서 승하 하였다
잣을 열심히 먹고 있는 등에 줄이 한 줄 가있는 아이.
정자각으로 오르는 계단의 곡선은 여느 계단의 선처럼 브드럽게 휘지 않은 독특한 양식이다.
정자각
정자각은 제향을 올리는 정(丁)자 모양으로 지은집
제향을 올릴때 왕의 신주를 이곳에 모시며
우측의 돌 계단은동계라고 한다
동계는 왕. 제관 등이오르내리는 계단 오른발을 먼저 내딛는다
정자각의 동쪽과 서쪽에는 계단이 있다.
동쪽의 계단을 동계(東階), 서쪽의 계단을 서계라고 부른다.
동계에는 2개의 계단이 있다. 신계(神階)와 동계(東階)이다.
신계는 왕릉의 주인인 선왕의 영혼이 오르는 계단이다.
다른 계단들과는 달리 계단에 장식이 되어 있어 쉽게 구분할 수 있으며
동계는 제관들이 오르내리는 계단이며 참배를 하러온 왕도 동계를 이용해 오르내린다.
동계에 있는 신계와 동계, 왼쪽의 장식있는 신계는 선왕의 혼령이 오르내리는 계단이고 오른쪽의 장식없는 계단은 제관이 오르내리는 동계이다.
서쪽에 있는 계단을 서계(西階)라고 부른다.
축문을 읽은 축관이 제사가 끝난 후 이 계단으로 내려가 예감에서 축문을 불대우는데
예감은 제사가 끝난 후 축문을 불태우는 곳이며
산불이 날 것에 대비해 돌 칸막이를 만들어 둔 것으로 생각된다.
축관이 이곳에서 축문을 제대로 불태우는지 여부를
홍살문 옆의 망료위에서 사헌부 감찰이 감시하게 된다.
정자각의 좌우에는 수라간, 수복방, 비각 등이 있는데
수라간은 제례 음식을 준비하는 곳이고,
수복방은 제기(祭器)를 보관하거나 능역을 청소하는 노비들이 거처하던 곳으로
각은 능에 세우는 비석을 보호하기 위해 만든 건물이다.
선왕의 신도비나 해당 왕의 일대기를 기록한 비석을 세워 이 비각 안에 보호하고 있다.
이것도 저것도 아닌 적당한 크기의 설명 할 길 없는 개구리가 후래쉬를 터트리던 뭐하던 가만히 있는다.
우리가 성묘를 가면 묘앞에 있는 상석에 제물을 올려두고 제사를 지내지만,
왕릉에서 제사를 지내는 곳은 바로 이 정자각이다.
고운 붉은 빛 물봉선화 뜨락은 설명할 길이 없다.
금천교를 지나면 첫번째로 만나는 것이 신문(神門)으로
신성한 공간임을 알리는 문으로, 붉은 칠을 한 나무문이다.
홍살문(紅箭門, 붉은 화살문)이라고도 히먀
화살 모양의 장식은 법의 곧고 엄정함과 나라의 위엄을 상징한다고 한다.
홍살문의 우측에는 망료위(望燎位)가 있다.
홍살문에 도착한 제관이 이곳에서 절을 하고 정자각으로 가게 된다.
홍살문에서 정자각까지 이르는 길을 참도(參道)라고 하며
이곳을 참배하는 사람들이 지나는 길로
이 참도를 자세히 보면 높낮이가 다르게 만들어진 것을 볼 수 있다.
궁궐이라면 당연히 높은 곳이 왕의 길이겠지만,
왕의 조상이 머무는 이곳에선 죽은왕이 다니는 신도(神道)이며,
측면의 낮은 길이 왕이 다니는 길인 어도(御道)이다.
왼쪽에 신도가, 오른쪽에 어도를 만들어놓은 경우도 있고,
영릉의 경우처럼 가운데에 신도를 둔 경우도 있다.
있을 법하지는 않지만 송사리가 가득하고 때가 어느때인데 올챙이도 많다. 사진의 당사자는 헛손질을 하고는 여여쁜 선남들이 잇는곳에서
벌이 많자 벌이다 라며 봉지를 흔들어 물을 튀게하여 그들을 쫒고는 집으로 가는내내 또다른 지난 옛날 무용담을 꺼내며
숨이 막히게 웃음보를 터트리는 이야기를 해준다.
왕릉을 가려면 금천교(禁川橋)를 건너야 한다.
궁궐에서 왕을 만나려면 금천교를 건너야 하듯이,
왕릉에도 금천교가 있어 왕릉을 참배하는 사람들의 삿된 마음을
이 다리 위에서 털어버리고 나아가야 한다.
왕릉에는 보통 내금천교와 외금천교가 있다.
왕비가 거둔 오늘의 수확물 .송사리 잡던 검은 봉지에 넣자 다현이는 참 봉지가 여러 모로 다양하게 사용되는거군요 한다.
조선의 왕릉인 사초지의 위쪽에는 정중석의 위쪽으로 무석인과 문석인,
그리고 문·무석인이 탈 석마가 쌍으로 자리하고 있다.
능상의 좌우에는 망주석(望柱石)이 한 쌍 배치되어 있다.
망주석을 만든 이유에 대해서는
1. 음양의 조화
2. 무덤의 위치 표시
3. 왕릉의 생기 보존을 위한 시설물 등의 여러가지 해석이 있다.
망주석을 자세히 보면 세호(細虎)라고 부르는 몸이 길다란 호랑이가 새겨져 있다.악귀를 물리치려는 의도로 설치되었다는 석양(羊)>산 중의 맹수들로부터 왕릉을 지키려는 의도로 만들어진 석호(虎)>능상을 보호하기 위한 난간 모양의 난간석, 병풍석과 함께 봉분을 보호하고 있다.>
능상 뒤편에는 동, 서, 북쪽을 막아 놓은 굽은 담(曲墻)이 있다.
능상을 보호하기 위한 시설이다.
능상의 아래쪽에는 병풍석과 난간석이 조성되어있다.
능상을 보호하기 위해 능상 주위를 난간처럼 둘러싼 석물이다.
병풍석에는 12방위가 표시되어 있다.
한마리는 위쪽을, 다른 한마리는 아래쪽을 향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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