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행복한 이야기 -/휴식이 있는 공원

덕수궁

klcyoh 2009. 3. 22. 20: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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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3.21

덕수궁 대한문 좌측 돌담길은 많은 사람들의 산책으로 붐볐고 쉴 수 있는 카페도 많이 보였다.

담을 돌아 미 대사관 사저 앞을 따라 올라 가는 골목은 한적하고 조용한 느낌의 운치 있는 길의 모습 이다.

 

  

처음 검색시   문이 많구나 생각했는데 내부에서 보는 문은 문의 형식만 있고 담으로 막혀 있는 곳도 있고

문의 이름은 검색에는 없지만 실제 있는 곳도 있었는데  

주차장 시설이 없어서 ..    서울 성공회 성당안으로 들어 간 후 나와 보니 바로 앞에 화재시 필요한 커다란 소방 출입문이  있고

 문이  열리더니 승용차 한대가 미끄러져 들어간다.

 

http://www.deoksugung.go.kr/about/history.asp  (덕수궁 홈)

1592년 임진왜란이 일어나서 선조가 의주까지 피난갔다가

서울로 돌아와 보니 경복궁, 창덕궁, 창경궁이 모두 불타버려서

왕이 거처할 왕궁이 없어서 왕족의 집 중에서 가장 규모가 크고 완전했던

월산대군가를 행궁으로 삼아 왕이 거처하게 되었다.
1608년 2월에 선조는 행궁의 침전에서 돌아가시고 광해군이 행궁의 서청에서 왕위에 즉위하였다.

광해군 3년(1611)에 행궁을 경운궁 이라 하였다. 경운궁의 정문은 원래 정남쪽의 인화문이었으나,

다시 지으면서 동쪽에 있던 대안문을 수리하고 이름도 대한문(大漢門)으로 고쳐 정문으로 삼았다.

 1906년에는 화재로 불탔던 중화전이 복구되었다.
석조전은 1900년에 착공하여 1909년에 완공되었다.

1907년 7월 20일에 일본침략자들의 강압에 의하여 고종이 순종에게 제위를 전위 하자

선제가 거처하는 궁이 되어 덕수궁이라 하였다

입장료 1,0000원에 현대 미술전 까지 관람한다.

..작은 아이를  업은 저 그림 중학교 때 교과서에서 본것인데 내 마음에 깊이 세겨져 있어 지금 보았는데도

바로 기억이 난다. 말하지 않아도 우리의 일상이고 우리 모습이었던  탓일까

대한문 좌측의 덕수궁 돌담길 ..실제 덕수궁 전체가 이런 돌담이지만 지도에는 이거리만 덕수궁 돌담길로 표기 되어있다.

불과 3일전에  여의도국회 의사당 길에 개나리가 몽우리를 터트리더니

 오늘 그 길에 진달래까지  핀것을 보았는데  이곳 덕수궁도 유체꽃과 진달래가 화사하게 피었다.

 

지금보고도  놀랄 정도인데 당시 저만한 크기가 주물로 가능 했을 까... 

에밀레의  공명을 덜어 넣지 않고 서야  그 기포와 단단함 ,균열, 굳는 정도를

해결한것이 놀랍다. 현판의 광명문이라는 휘호는 이곳이 예전에는 문이었는지도 모르겠다.

물시계 자격루

동학혁명 추모 벽화와는 다른가/ 

곳곳에 휴식처가 많은데도 계단이 편한가 보다   닌텐도는 칩이 너무 비싸다.

 

 

 보수중인  벽엔 덕수궁의 역사가 기록되어있다. 요즘 공사장의 담장은  그림과 멋진 광고, 아이디어가 

많은 것을 보면 예전의  건축에 비하면 참 세련되어 있다.

토요일의    한가로움이 사람들을 고궁에 불렸는지는 모르지만 편안한 걸음 걸이의 사람들이 많았다.

저 도? 그을음은 무얼 말하는 듯 하다

불을 때는 방식은 모르겠지만  일반 아궁이의 모습이 아니고 사람이 드나들 정도로 크로 넓다.

석조전과 현대 미술관 2곳에서무료 현대 미술전을 전시한다.

 

 비평가는 가는 길에 대해 설명을 잘하지만 운전을 못하는 사람이라고 하며

피카소는 그 해설로 전세계인을 끌어 당겼는지 모르지만

오늘 그림과 조각들은

말하고자 하는것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다. 그냥 심호흡을 하게 한다.

이중섭이라기에 

행여  처자가 보고 싶고 배가 고파 굶어 죽은 천재의 햇살 따사로운 처마밑의 무기력한 슬픔이라도  볼까했는데

글로 본 이미지가 오히려 더 강해  보고 지나쳤다.

샤걀의 푸른빛은 우리가 꾸는 꿈을 그리는것 같았는데 이 그림도  바라보는 순간 우리의 잠자는 꿈의 모습을 그린것 같다

 

 

 

 

 

2품이면

 

 

대한 성공회 서울 교구 대성당이라고 하는데 덕수궁 정면  우측 부분에 있고

덕수궁에 주차 시설이 없어 이곳에  주차 해 놓으면 가격이 조금 비싼 편이다. .

 

 

 

아치의 공간을 막은것 만으로 도  수도사들이 머무는 곳같이 침묵 가운데 진중한 모습이다.

 

 

 

 

 

 

 

 

한국 건축은 못을 사용하지 않아 궁의 일부를 옮기거나 궁에 필요한 건물이 있으면 바로 옮겨 조립을 하곤 했고

그 모습은 경복궁에도 여러개가 있다.

 

 

 

 

----------------------------------------------------------하단은 문화재청 홈에서 ,,

조선시대에 지어진 궁궐은

 경복궁(景福宮), 창덕궁(昌德宮), 창경궁(昌慶宮), 경희궁(慶熙宮), 덕수궁(德壽宮)

등 5대 궁궐이 있습니다.
- 경복궁은 조선 창건초기《시경》의‘군자만년개이경복(君子萬年介爾景福)’이란 글귀에서 따

경복궁이라 하였습니다.
- 창덕궁은 태종 때 처음 세워진 궁궐로서 덕의 근본을 밝혀 창성하게 되라는 뜻을 담고있습니다.
- 창경궁은 태종이 세종에게 왕위를 물려주면서 자신이 거처할 궁궐로 지은 수강궁(壽康宮)터에

1484년 성종이 별궁으로 건립하였습니다.
- 경희궁은 광해군이 인조의 아버지인 원종이 살던 집터에 궁궐을 지어 당초 경덕궁이라 하였으나

영조때 다시 경희궁으로 개칭하였습니다.
- 덕수궁의 원래 이름은 경운궁(慶運宮)이었고, 고종이 태황제로 물러날 때

고종의 만수무강을 비는 뜻에서 덕수궁이라 부르게 되었습니다.

궁궐문의 이름은 음양오행을 기본으로 지어졌으며,

궁궐 중앙의 문은 임금의 정치를 의미하는‘政’자가 주로 사용되었으며

동,서,남,북문은 각각 봄, 가을, 여름, 겨울을 의미하므로‘春’, ‘秋’등의 글자가 사용되었습니다.

또한 궁궐 남문(정문)의 이름에는 공통적으로‘化’자가 들어가는데

이는 백성을 교화(敎化)하여 감화(感化)한다는 의미로 사용한 것입니다.

조선시대에 조성된 서울의 대표적인 궁궐은 경복궁, 창덕궁, 창경궁, 경희궁, 경운궁(덕수궁) 등 5대 궁궐이 있었으나 경희궁은 원형이 크게 훼손되어 제외하였습니다.
궁궐은 일반적으로 궁(宮)과 궐(闕)이 합쳐진 말로서

경복궁의 정문은

광화문              (光化門),

창덕궁은 돈화문(敦化門),

창경궁은 홍화문(弘化門),

경희궁은 흥화문(興化門),

경운궁은 인화문(仁化門)으로 지어졌습니다.

그러나 경운궁은 1906년 현재 위치의 대안문(大安門)을 정문으로 사용하면서

대한문(大漢門)으로 명칭이 바뀌어 오늘에 이르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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