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05.06
담양 팔경중의 하나인 사인암을 작은 사찰로 알고 업데이트 안한 네비게이션으로 찿아간 길은 작은 놀람이 있는 풍경이다.
추사 김정희가 하늘에서 내려온 한 폭의 그림 같다고 예찬했을 정도로 뛰어난 경치를 자랑하고 있는
'사인암' 이라는 이름은 고려 후기의 유학자인 역동 우탁(1263~1342)이 지냈던
사인이라는 벼슬에서 유래하였으며
단양이 고향인 그는 이곳을 유난히 사랑하여 자주 찾았다고 하는데
조선 성종 때 단양 군수를 지냈던 임재광이 그를 기리기 위해 이 바위를 사인암이라 지었다고 한다.
잘씌여진 옛글씨는 선비의 풍류로 보이고 근래의 조악한 글씨는 문화재 파괴로 보이는 이유는?
언듯보이는 얼굴용과 뿌리근의 힘찬 필체!!!
사인암 옆의 청련암입니다.
이제 갓지었는지 단청도 없고 풍경....이렇게 새것인 풍경은 처음보는데 소리까지 새것으로 들리는것 같다.
청련암은 고려 공민왕에 승려 안나옹 선사에 의해 창건 되었으며
장구한 역사를 지닌 고찰로 본시 대강면 황정리 28번지에 위치했었으며 대사찰이던 대흥사의 말사로 주재했었으나
구한말인 1876년 일본군의 침략이 있었던바 문경에서 봉기한의 병장
황토 고리군과 접전 끝에 본사인 대흥사는 불에 타 소실 되었고
1954년 적색분자 소탕작전 관계로 황정리 일대에 소개령이 내려졌으므로
그곳 주민과 함께 청련암 또한 현 위치인 사인암리 산 27번지에 이주하면서
기존의 대들보와 기둥을 함께 가져와 이전함으로써 현재에 이르고 있다고 한다.
우탁의 탄로가(백발가)
한 손에 가시 쥐고 또 한 손에 막대 들고
늙는 길 가시로 막고 백발은 막대로 치려했더니
백발이 제 먼저 알고 지름길로 오더라.
춘산에 눈녹인 바람 건듯 불고 간데 없다.
잠시만 빌려다가 머리 위에 불게 하여
귀밑에 해묵은 서리를 녹여볼까 하노라.
늙지 말고 다시 젊어져 보려했더니
청춘이 날 속이고 백발이 다 되었구나.
이따금 꽃밭을 지날 때면 죄 지은 듯하여라.
절벽의 보랏빛 꽃을 피우고 있는 나무는 오동 나무 같다.
독특한 자연 그대로의 매발톱이다.
사찰뒤의 평범한 풍경도 감탄을 자아 낸다.
역동 우탁선생 업적비
선생께서는 단양군 적성면 현곡리에서 출생하였고
성리학과 역학 연구에 몰두, 통달하셨으며 '감찰규정'으로 근무하실 때 왕의 비행을 고치고자 도끼를 앞에 놓은 , 이른바 지부상소를 하신 충신이며
관직은 성균관 좨주(정3품)에 이르렀고 문하 퇴계 이황은 "선생의 충의 대절은 이미 천지를 움직였고
산악도 움직일만하고 진리를 논함에 있어서는 정당했다" 하였으며
'후학의 사범이 되어 백세묘향을 받을분 '이다고 했는데
우리나라 시조역사를 말할 때 선생을 '시조의 중시조'라고 추앙하고 있다고 한다.
정현이는 이곳에서 녹색 텐트를 펼치고 자리를 잡아 우리는 서로 헤어지는데 여기서 본인은 이미 힘차게 개울로 달려가다가
단단한 바위인줄 안 바위가 뒤집어 지면서 오른쪽 넙적다리에 큰 상처가 나 내내 절둑거리게되고 ,이후 어딘가 팬션에 자리 잡은 재식이는 개울에서 미끄러져
굵은 가시에 굵혀 상당히 많은 상처를 입고 서로의 부상에 대해 과장하면서 흐뭇해 하게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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