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07.17
서울에서 도팍한 시간이 12시 17분인데 성 안쪽 주택가 길에 주차하고 성벽으로 올라서는 순간 그윽한 경치에 감탄을 하게 된다.
화성이 얼마나 큰지, 시간이 얼마나 걸리는지 모르지만 오늘 전체를 돌고자 한 날인데 오는길 비도 만나고 도착하니 무척 더운느낌이다.
서북각루
각루는 성곽의 비교적 높은 위치에 세우져 주변을 감시하고 휴식을 취할수 있는 시설이다.
비상시 각방면의 군사 지휘소 역활도 하였다. 서북각루는 화성의 4개 각루중 하나로
숙지산이 마주 보이는 자리에서 화서문 일대의 군사를 지휘하기 위해 만들었다.
각루에는 무더위에도 말할수 없이 시원한 바람이 불어 잠을 청하거나 휴식하시는 분을 만나게 되는데
수원 화성을 한바퀴 도는데 얼마나 걸리나요 하니 한시간 정도면 된다고 하신다.
루란 2층이 디어야 하는것이고 각이란 땅에서 바로 올라오는 것을 말하는데
본인도 이 형태는 각ㄹ이라고 하여야 할지 루라고 하여야 할지 난감한데 이래서 각루라는 이름이 붙은것 같다.
수원화서문
화서문은 화성의 4대문 중 서쪽 대문읻. 1975년(정조19)7월21 공사를 시작하여 1796(정조20) 1월8일 마쳤다.
화성 서쪽의 남양만과 서해얀 방면으로 연결되는 통로 역활을 하였다. 원래의 모습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어 보물 제 403호로 지정되었다.
편액은 초대 화성유수였던 재제공이 썼으며 옹성 안 홍예문 좌측 석별에는 성문 공사를 담당하였던 사람과 책임자의 이름이 새겨져 있다.
원래 수원은 지금보다 남쪽으로 약 8km 떨어진 화산아래가 그 중심이었다.
조선 정조 13년(1789) 정조가 아버지 사도세자의 원침을 양주 배봉산에서
현 위치인 수원의 화산으로 옮기면서 그 아래에 있던 관공서와 민가들을 팔달산
아래로 집단 이전시킴으로써 현재의 수원이 형성되었다.
정조는 아버지에 대한 효심과 왕권 강화의 일환으로 정조 18년(1794)에 축성공사를 시작,
2년 뒤인 1796년에 완공했다. 화성은 실학자로 불리우는 유형원과 정약용의 성설을 설계의 기본 지침으로 삼아,
영의정 채제공이 성역을 주관하고 화성유수 조심태 등이 전력하여 이룩한 것으로 우리나라 성곽 중에서
구조 배치가 가장 과학적이면서도 우아하고 장엄한 면모까지 갖추고 있다. 특히 성곽의 축조에 석재와
벽돌을 병용한 것, 화살과 창검을 방어하는 구조와 총포를 방어하는 근대적 성곽구조를 갖추고 있는 점,
용재를 규격화하여 거중기 등의 기계장치를 활용한 점 등에서 우리나라 성곽건축사상 가장 독보적인
건축물로 평가받고 있다.「화성」은 ’97. 12. 4. 이태리 나폴리에서 열린 유네스코 세계유산위원회
제21차 총회에서 세계문화유산으로 등록되었다.
서북각루에서 시계방향으로 방향을 잡고 출발하는데 가끔은 성밖으로 나와 전체 조망을 하기도 하는데 아름답다.(밖에서 본 화서문)
수원 서북 공심돈:보물제1710호
공심돈은 적의 동향을 살핌과 동시에 공격도 가능한 시설로 수원 화성에서만 볼수 있다.
1796년 정도20.3월10 완공된 서북공심돈은 3층건물로 아래쪽 부분의 치성은 석재로 위쪽 부분의 벽ㅈ체는 전돌로 쌓았다.
내부는 편리리한 구조를 갖추었으면 계단을 통해 오른내렸다.
1797년 정조21년1월 화성을 방문한 정조는 서북 공심돈을 보고
"우리나라애서 처음으로 만든 것이니 마음껏 구경하라"며 매우 만족스러워했다고 한다.
독창적인 건축 형태와 효과적인 재료 활용르 보여주눈 서북공심돈은 역사적,학술적 건축적 가치를 인정 받아 보물로 지정되었다.
시선을 재촉하여 저만치 앞에 있는 북포루의 전경을 바라본다.
북포루
포루는 성곽을 바깥으로 튀어나오게 만든 치성 위에 지은 목조 건물이며 군사들이 망을 보면서 대기하는 곳이다.
북포루는 화성의 5개 포루 중 하나로 1795(정조19)2월20일 완공되었다. 장안문과 화서문의 중간에 위치하여
근처의 북서포루와 함께 성벽에 다가오는 적을 공격 할 수 있게 하였다.
화성을 따라가며 성안과 밖은 공원으로 조성되어 나이드신 어른들과 휴식하는 사람들의 차지가 되었는데 ,
수원 사시는 분들은 이런 좋은 곳을 지니고 계셔서 참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모든 포대는 올라가서 경치를 들여다 볼 작정인데 , 북포루에서 내려다보는 경치 만만치 않다.
무언가 뒤를 끄는 느낌이여 돌아보니 북포루 ,화서문 서북각루의 모습이 기개가 있다.
북서포루
북서포루는 화성의 5개 포루중 하나이다. 화서문과 장안문 사이에 위치하며 1794(정조18)9월24일 완공되었다 .
포루는 성벽의 일부를 바깥으로 튀어나오게 만든 치성 위에 3층 내부를 비워두고 그 안에서 화포공격을 할 수 있도록 만든 시설물이다.
웅장하게 다가오는 장안문
장안문
장안문은 화성의 4대문중 북쪽문으로 수원화성의 정문이다. 1794(정조18)2월28일 공사를 시작하여 9월5일에 마쳤다.
장안이라는 말은 수도를 상징하는 말이자 백성들의 안녕을 의미한다.
장안문은 우진각 지붕(지붕면이 사방으로 경사지게 되어 있는형태)으로 규모가 웅장하다.
성문의 바깥에는 반달 모양의 옹성을 쌓았는데 이것은 항아리를 반으로 쪼갠 것과 같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으로 성문을 보호하는 역할을 한다.
밖에서 본 장안문
옹성에서 바라본 장안문
뒤돌아 본다. 북서적대,서북공심도, 화서문이 보인다.
북동적대
적대는 성문을 공격하는 적을 방어하기 위해 성문 좌우 옆에 있는 치성 위에 세운 시설이다.
4대문중 장안문과 팔달문 양쪽에만 설치하였다. 장안문의 동쪽에 위치한 북동 적대의 높이는 성벽과 같다.
치성 밖 아래쪽에 3개의 현안(위아래로 길게 낸 구멍)을 만들어 성아래 가까이 다가온 적들의 동태를 살피고 공격 할 수 있도록하였다.
북동치
"치"란 일정한 거리마다 성곽에서 바깥으로 튀어나오게 만든 시설이다.
성벽 가까이에 접근하는 적군을 쉽게 공격하고 성벽을 보호하기 위한 것으로 화성에는 10개의 치가 있다.
치는 꿩을 의미하는데 꿩이 자기 몸은 잘 숨기고 밖을 엿보기를 잘하기 때문에 그 모양을 본따서 "치성"이라고 이름 붙인 것이다.
북동치는 북동 적대 바로 옆으로 적대와 서로 이어져 있다.
북동포루
북동포루는 화성의 5개 포루중 장안문과 화홍무 사이인 북동쪽에 위치하고 있으며 1797(정조18)9월23일에 완공되었다..
포루는 적이 성벽에 접근하는 것을 막기 위해 화포를 쏠 수 있도록 만들었으며
성벽의 일부를 바깥으로 튀어나오게 만든 치성의 발전된 형태이다.
화성의 성중 가장 아름답게 느껴지는 화홍문으로 가는 길
이곳에서는 \1,000 의 관람권을 발급해야 갈 수 있는데 이 표는 화성뿐아니라 수원의 박물관등도 같이 연계되어 사용할수있게 하였다.
북수문
화성을 남북으로 가로질러 흐르는 수원천 위에는 북수문과 남수문 두개의 수문이 있다.
북수문은 1794(정조18)2월28일 공사를 시작하여 1795(정조19)1월13일에 완성되었다.
별칭은 화홍문으로 화자는 화성을 의미하고 홍자는 무지개를 뜻한다.
장쾌한 물보라가 수문으로 넘쳐나는 모습이 아름다운 곳이다.
물고기가 많은 하천 입니다.
연꽃이 아름다운 커다란 연못이 보입니다.
다시 성밖으로 나와서 보면 좌측으로 가야할 방화수류정과 북암분이 풍경으로 자리잡았습니다.
참고로 척 더운 날이지만 루나 문에 올라가면 바람이 매우 시원하다.
화홍문 밖 풍경
방화수류정으로 올라가는길은 조금 가파르다.
숨은 그림 찿기 (참새)
수원 방화수류정(동북각루)
방화수류정은 1794(정조18)10월19일 완공되었다.
주변을 감시하고 군사를 지휘하는 지휘소와 주변 자연환경과 조화를 이루는 정자의 기능을 함께 지니고 있다.
꽃을 찿고 버들을 따라 노닌다"라는 뜻을 지닌 방화수류정은 독특한 평면과 지붕 형태때문에 바라보는 위치에 따라 다른 모습을 보여준다.
이것은 화성에서 가장 뛰어나며 다른 성곽에서는 볼 수 없는 독창적인 건축물로 평가되고 있다.
수류정 지붕의 형태도 처음보는 특이한 형태이다.
밑으로 내려다 보면 보이는 연꽃이 많지도 적지도 않게 균형을 잘맞춘 넓은 연못
발걸음을 다시하는데 뒤돌아보니 장안문과 북동포루가 보인다.
북암문
암문은 성곽의 깊숙하고 후미진 곳에 적이 알지 못하도록 만든 출입구이다.
사람이나 가축이 통화하고 군수품을 조달하기위한 목적으로 설치되었다.
화성의 5개 암분중에서 북암문은 방화수류정과 동북포루 사이에 위치하고 있다.
화성에서 유일하게 벽돌로 좌성 성벽을 쌓았으며 1796년(정조20)3월27 완공되었다.
밖에서 본 의연한 동북포루
동북포루
포루는 성벽의 일부를 바깥으로 튀어나오게 만든 치성위에 지은 목조건물이며
군사들이 망을 보면서 대기하는 곳이다. 동북포루는 화성의 5개 포루 중 하나로 1796(정조20)5월15일 완공되었다.
이곳의 지형은 주변보다 높아서 동암문과 동장대, 북암문과 방화수류정까지 바라볼 수 있다.
동암문
암문위에 벽돌을 깔고 커다란 둥근 담장이 설치된 구조이며 1796(정조20)3월25일 완공 되었다.
가야할 동장대의 성밖 앞도 잘 가꾸어진 소나무로 인하여 풍경이 된다.
담장을 기웃거리며 들여다 보는 동장대
국궁장이며 2천원의 체험료가 있으며 30분마다 안내요원의 설명과 10발의 화살이 주어진다.
이분 처음 쏘는 활이라고 하는데 8발이 표지에 맞고 그중 4발이 표지에 꽃이신다.
이곳까지오는데 물 한모금 마시지 않고 더워서 인지 지하에 있는 허름한 식당에서 요기를 한다.
화성은 관람중 식사를 할곳이 없는것을 염두에 두어야 한다.
동장대(연무대)
장대란 성곽 일대를 한눈에 바라보며 화성에 머물던 징용외영 군사들을 지휘하던 지휘소이다. 화성에는 서장대와 동장대 두곳이 있다. 동장대는 1795(정조19)7월15일 공사를 시작하여 8월25일 완공되었다. 무예를 수련하는 공간이었기에 연무대라고 하였다. 이곳의 지형은 높지 않지만 사방이 트여있고 등성이가 솟아있어서 화성의 동쪽에서 성안을 살펴보기에 가장 좋은 곳이다.
동장대 마당
언덕위의 동북공심돈으로 향한다.
동북공심돈
공심돈은 성과 주위와 비상시에 적의 동향을 살피기 위한 망루와 같은 것으로 화성에서 처음 등장하였다.
화성에는 서북 공심돈-남동 심돈-동북 공심돈이 있다.동북 공심돈은 1796(정조20)7월19일에 완성되었다 .
형태는 커다른 둥근 원의 모습으로 화성 성곽내에서 가장 특징이 잇는 건물의 하나이다.
동북공심돈 내부는 소라처럼 생긴 나선형의 벽돌 계단을 통해서 꼭대기에 오르게 되어 있어 일명 소라각이라고도 불린다.
성밖에서 바라본 동북공심돈
동북노대
노대는 성 가운데서 다연발 활인 쇠뇌를 쏘기 위하여 높게 지은 것으로서 화성에는 서노대와 동북 노대 두 곳이 있다
동북노대는 창룡문과 동북 공심돈의 중간에 동북향으로 자리 잡고 있으며 반달 모양의 담장으로 보호하고 있다.
이쯤에서 뒤에 시선을 느껴 돌아 보는데 멋진 동북 공심돈과 동북노대 사이에 도로가 나 있다.
창룡문
화성의 동문으로 서남으로 행궁과 1,040보 떨어져 있고, 유좌(酉坐) 묘향(卯向)이다. 안팎으로 홍예를 설치하였는데,
안쪽은 높이가 16척 너비가 14척, 바깥 쪽은 높이가 15척 너비가 12척, 전체 두께는 30척이다.
안쪽 좌우의 무사는 각각 아래 너비가 30척 높이 18척 5촌이며, 좌우의 와장대(臥長臺)는 길이가 각각 20척이고
돌계단은 각각 14층이며 너비는 9척이다. 바깥쪽 좌우 무사의 너비는 각각 25척 높이는 18척이며, 안팎 홍예 사이의 좌우 무사는 높이가 각각 17척, 양쪽 선문 안은 쇠로써 빗장을 설치하였다.
홍예의 덮개판 위는 3물로 하였고 두께는 3촌이며, 거기에다 안팎으로 장대 각 2층 홈통 각 2개를 더하였다.
안 쪽은 평평한 여장으로 너비는 51척 높이가 4척 7촌 두께가 2척 1촌이다. 외면은 여장의 너비와 높이 두께는 모두 내면과 같다.
타구(口)는 6개[첩은 5개], 방안 총혈은 6개 [각각 사방 8촌 가운데 1첩은 구멍이 2개], 좌우의 여장은
각각 너비가 23척 높이가 5척 6촌 가운데에 작은 널판지 문을 설치하였는데 높이 6척 너비 5척 5촌이다.
장(墻)내에는 6간의 누를 세웠다[안팎 3포(三包)에 2익공(翼工)]. 정면의 간(間)은 너비가 16척 5촌인데 밑에 널판지를 깔았다
[높이 1척]. 좌우의 협간은 각각 너비가 8척 5촌 모두 세로 2간이며 전체 길이는 16척이고 기둥의 높이는 7척 5촌이며 단확은 3토를 사용하였다.
대들보 위에는 회를 발랐으며 수문청은 3간으로 문안 북쪽 가장자리에 있다.
창룡문은 안과 밖의 전경을 가지고도 포스팅 하나를 적을만큼 아름 다운 성루 인데 본인은 패스
동일포루에서 뒤돌아보는 창룡문
동일포루
포루는 성벽의 일부를 바깥으로 튀어 나오게 만든 치성위에 지은 목조 건물이며 군사들이 망을 보면서 대기하는 곳이다.
동일포루는 화성의 5개 포루중 동
쪽에 위치하고 있으며 1796(정조20)7월10일 완공 되었다.
동일치로 가는 앞 방향
동일치
화성에는 10개의 치가 있는데 동일치는 동일포루에서 봉돈쪽으로 125보 (148M)거리에 있다.
동포루
동포루는 화성의 5개 포루중 동쪽 동일치와 동이치 사이에 위치하고 있으며 1796(정조20)7월16일 완공되었다.
포루는 적이 성벽에 접근하는것을 막기 위해 화포를 쏠수 있도록 만들었으며
성벽의 일부를 바깥으로 튀어 나오게 만든 치성의 발전된 형태이다.
동포루에서 바라본 동일포루. 안으로 들어간 동일치는 보이지 않는다.
동이치
동이치는 동포루와 봉돈의 중간 지점에 있다. 뒤에 보이는 거대한 건물은 성당인줄 알고ㅗ 들려 보려고 햇는데
동포루에서 쉬고 계시는 아저씨에게 문의하니 제일교회라고 하시며 뭐하러 교회만 저렇게 크게 올라간다고 하며 역정을 내시는데
나중 서장대에서 위치 잡는데 가장 효과적인것을 알게 된다.
봉 돈
1796년6월17일 완선된 수원 화성 봉돈은 일반적인 봉수대가
주변을 잘 살필 수 있는 산 정산에 별도의 시설로 만들어진것과달리 화성 성벽에 맞물려 벽돌로 만든 것이 특징이다.
우리나라 성곽 양식에서는 보기 드문 형식으로 마치 예술 작품처럼 정교하게 만든 수원 화성의 대표시설이다.
봉화신호체계 봉수는 밤에는 횃불,낮에는 연기로 전하는 군사신호 체계이다.
총 다섯 개의 횟불 구멍을 통하여 상황을 전달하는데 남쪽 첫 번째 횟불 구멍부터
○평상시에는 밤낮으로 봉수1개
○적이 국경근처에 나타나면 봉수2개
○국경선에 도달하면 봉수3개
○국경선을 침범하면 봉수4개
○적과 아군 사이에 전투가 벌어지면 봉수5개를 올렸다.
안은 온돌방과 무기를 넣는 창고로 양쪽으로 나뉜다.
동이포루
동이포루는 화성의 5개 포루중 동쪽에 위치하며 1796(정조20)7월3일에 완공되었다
편탄하고 넓은 지형에 위치하고 있으며 봉돈을 방어하기 위하여 설치하였다.
느리게 가만히 뒤돌아보자 봉돈과 동이치 동포루가 저리 수백년간 의연하게 자리잡고 있다.
동삼치
동삼치는 동이포루와 동남 각루의 중간 지점에 있다. 화성에는 몇개의 치가 있다고? 10개
"치"는? 떨지 말고.치란 일정한 거리마다 성곽에서 바깥으로 튀어 나오게 만든 시설로
성벽 가까이에 접근하는 적군을 쉽게 공격하고 성벽을 보호하기 위한 것으로 치는 꿩을 의미하는데
꿩이 자기 몸은 잘 숨기고 밖을 엿보기를 잘하기때문에 그 모양을 본따서 "치성"이라고 이름 붙인 것이다.
기울어져 가는 동남 각루 옆과 뒤를 받쳐 놓았다. 오늘 유일하게 올라가지 못하는 곳이다.
남수문에서 성곽길은 끊어지고 팔달문만 남대문처럼 홀로 서있는 곳이다.
조금만 힘쓰면 성보다높은 건물은 낮추고 성곽은 이을수 있을것 같은 아쉬움이 생긴다.
남수문 밑으로 지나면 좌측에 지동시장이 있고 우측에 팔달문으로 가는 영동시장이 있다.
영동시장 입구 우측 2층에 유상 박물관이 있어 들러 봅니다. 결혼 2년만에 홀로되어 근검절약으로 갑부가 되어 3.1운동을 보고 모든 재산을 사회에 내 놓으셨다고 한다.
입구는 노숙자들이 대낮부터 취해서 거침없이 떠들며 들어 가는 입구까지 앉아 있고 흉상 뒤에도 먹다버린 막걸리 통들이 세워져 있다.
박물관은 시장 상인들의 인형과 이야기들이 적혀 있다.
차와 사람이 없는 보물 402호인 팔달문을 찍기는 쉽지 않다. (성의 우측면)
성문의 정문.
성문의 좌측 면
팔달문의 뒷태
날은 덥고 이제 가파르게 오르는 길이다.
남치. 팔달문과 남포루 사이에 위치하고 있다.
팔달문과 멀리 제일교회가 보인다.
남포루
남포루에서 보는 올라가야 할 성벽길
한국의 산을 보여주는 굵은 소나무는 감탄을 자아 낸다. 이런 풍경이 한국인이 가지고 있는 서정인것이다.
서남이치
서남암문과 서남포사 .
화성 5개의 암문 중에서 유일하게 포사가 설치되어 잇는것이 특징이다.
1796()정조2008월6일 홍예가 완성되었다.
포사는 성 밖의위험을 성 안으로 알리는 역할을 하는 시설로 깃발을 휘두르거나 대포를 쏘아 위급신호를 전달하였다.
서삼치
서삼치는 서포루와 서남암문 사이에 있다.
이 성밖으로 화장실과 휴계실이 있다.
서포루 가는 한적한길
서포루 화성의 5개 포루 중 하나로 1796년(정조20)8월18일 완공되었고 서암문이 적에게 발각되어 공격 받는 것에 대비하여 설치되었다.
당시의 풍경에는 사방을 감시하기 위하여 소나무 숲이 더 멀어져 있었을 것이다.
효원의 종
상당히 크며 소리가 좋다. 열이 골고루 적용되지 않아 도자기 1M 이상 크기의 접시를 굽기 힘든것과 같은 원리로 종도 콘것은 만들기 힘들고
또 소리의 긴 여울림이 합쳐지기 힘들기 때문인데 이는 울림에서 조금만 기다리면,
마치 사람이 우는 듯 소리가 죽었다 되살아나기를 1분 넘게 반복하는맥놀이 현상인데
이런 소리를 내려면 우선, 종을 치는 부분인 당좌를 밑에서 3분의 1쯤에만들어야 한다.
또 표면의 무늬가 종의 좌우를 비대칭으로 만들어 맥놀이를 극대화하고 주파수를 여러개 만들어 소리가 멀리가게 하고
은은한 소리가 오래가도록 종 밑부분도 파 놓아야 한다.
3번 치는데 \1,000원이다.
이분 아까 국궁장에서 활을 쏘시던 분이신데 덩치가 작은 것인지 종이 너무 큰것인지 ..
서암문
암문은 성곽의 깊숙하고 후민진 곳에 적이 알지 못하도록 만든 출입구이다.
사람이나가축이 통과하고군수품을 조달 하기 위한 목적으로 설치된 문이다. 화성에는 5개의 암문이 설치되어 있다.
서암문은 자연 지형을 이용하여 만들어 졋기 때문에 가까이 접근하기 전에는 암문이 있는지 알 수 없을 정도로 감춰져 있다.
1796년(정조206월18일에 완공되었다.
서암문 밖
다가 서야만 비로서 입구가 보인다.
서장대에서 바라보는 수원시내 전경.
서장대
장대란 성곽 일대를 한눈에 바라보며 화성에 주둔했던 장용외영 군사들을 지휘하던 지휘소이다.
화성에는 서장대와 동장대 두 곳이 있다. 서장대는 팔달산 정상에 있으며
화성 장대란 편액은 정조가 친히 쓴것이다. 1794년(정조18) 8월11에 공사를 시작하여 9월29일에 완성되었다
정조는 1795년(정조19)윤2월12일 현릉원(융릉)참배를 마치고
서장대에 올라 성을 수비하고 공격하는 주간 훈련과 야간 훈련을 직접 지휘하였다.
서노대
노대는 성 가운데서 다연발 활인 쇠뇌를 쏘기 위하여 높게 지은 시설이다.
화성에는서노대와 동북노대가 두 곳이 있다
서노대는 팔달산 정상에 위치하여 사방을 볼 수 있으며 정팔각형 편면이며 기와 벽돌로 쌓았다.
지나온 장안문과 북적 적대의 모습이 보인다.
서장대의 웅장한 모습 .
서이치 서이치는 서포루와 서장대 사이에 있다.
서포루 서포루는 화성의 5개 포루중 서북각루와 서장대 사이에 위치하고 있으며 1796년(정조2005월30일 완공되었다.
성벽의 질감이 투박하 단정한 회색으로 초록과 잘 어울린다.
서일치
서북각루와 서포루 사이에 있다.
되돌아 보는 산성
12시 17분 처음 출발하여 4시13분 도착한 서북각루에 오니 한시간걸리다던 아저씨는 계시지 않고 아저씨2만 주무시고 계신다.
사진으로는 풀의 무성함과 색조 편안한 질감을 표현하기 힘들다.
수원화성 관광안내 QR
사전에 위성항법장치(GPS)를 활용해 관람객의 위치를 파악, 관람객이 보고 있는 수원화성의 시설물을 한국어ㆍ영어ㆍ일어ㆍ중국어 등 4개 언어로 설명해주는
스마트폰용 오디오 스마트폰용 오디오 가이드 애플리케이션 '수원화성'을 설치하면 도움을 받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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