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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화연미정

klcyoh 2012. 5. 20. 21: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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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05.20

강화대교를 넘자마자 우측으로 3중의 철조망으로 둘러쳐진 해안선 도로의 길은  막히는 다른 길과 달리  언제나 한적하여

궁금증이 더해졌는데 급하게 꺾어 조금 가자 연미정이 나오는데 한적하고 아름다운 풍경이 가득하여 아무렇게나 찍은 사진을 올려도 아름답다.

 

바로 옆은 해병대 부대이다

 

 

성문은 부대 입구로 통한다

 

 

뽕나무의 잎은 먹기 늦었고 오디만 커간다

 

이 나무가 뽕나무라서 , 그 효용이 너무커서 , 그 순의 나물이 맛이 있고 진귀해서 자꾸 바라보게 된다.

 

 

 

 

 

북한이 바로 보인다

 

 

넉넉한 햇살에 한적함이 가득한 곳이 인파의 발길에 번잡스러워질까 걱정이 되는 풍경이다.

 

두 중년부부가 자기네 외는 없는걸 확인하고는 별별 놀이를 하다가 내눈에 띈다.

 

 

문의 나무는 삭아 없어졌지만 빗장을 지르던 구멍은 남아 있다.  

 

 

 

저 뽕나무를 건드릴까 걱정이 된다.  

아욱 된장국의 맛은 아련하게 그윽하고 구수하다고나 할까~

바로 옆밭의 완두콩을 바라보는데 내일 아침이면 구름까지 닿을지도 모른다.  

 

더가고 싶지만 표지판이 막는다.

 

 

 

   지정번호 :  인천유형문화재 제24호   

   지정연도 :  1995년 3월 1일  

   소 재 지 :  인천시 강화군 강화읍 월곶리 242  

   크기/면적 :  정면 3칸, 측면 2칸 / 약 40㎡  

    한강과 임진강의 합해진 물줄기가 하나는 서해로, 또 하나는

    강화해협으로 흐르는데,  이 모양이 마치 제비꼬리 같다고 해서 정자 이름을

    연미정이라 지었다고 한다. 

    또한 이곳은 자연경관을 보며 풍류를 즐기거나 학문을 공부하던 정자이다.  

    1995년 3월 1일 인천광역시유형문화재 제24호로 지정되었다.  

    언제 처음 지었는지 정확히 알지 못하나 고려 고종(재위 1213∼1259)이

    사립교육기관인 구재(九齋)의  학생들을 이곳에 모아놓고  공부하게 했다는 기록이 있다. 

    그 뒤 조선시대 삼포왜란 당시 왜적을 무찌르고 1512년 함경도 지방 야인(野人)들의 반란을 진압하는 등

    국가에 공로가 많은  황형(黃衡)에게 조정에서 조선 중종 5년(1510) 정자를 세워 하사하였다고 한다. 

    인조 5년(1627) 정묘호란 때에는 강화조약을 체결했던 곳이기도 하다.

 

     임진왜란과 병자호란 때 대부분 파손된 것을 1744년(영조 20) 유수(留守) 김시혁이 중건하였고  

     1891년(고종 28) 조동면(趙東冕)이 중수하였으며 1931년 유군성(劉君星)의 특지(特志)로 보수하는 등

     여러 차례 보수하였다.  

 

      6·25전쟁 때도 파손되어 전후에 중수하였고,

 1976년 강화 중요 국방유적 복원정화사업으로 현재와 같이

     복원하였다.  

     서쪽 모서리의 기둥은 6·25전쟁 때 포탄에 맞아 세 동강 난 것을 붙여 다시 세운 것이다.

     구조는 팔작지붕 겹처마로 10개의 기둥을 돌기둥[石柱] 위에 얹은 민도리집이며 정면 3칸, 측면 2칸에

     면적은 약 40㎡이다.  

     사방이 바라다 보이며, 월곷돈대 꼭대기에 세워져 있어 개풍·파주·김포군 일대가 한눈에 들어온다.  

     정자 옆에는 오래된(500년) 느티나무 2그루가 서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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