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lcyoh 2024. 12. 21. 15: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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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12.21 <작성 중>

경기 김포시 장릉로 79

구(지번) 주소풍무동 666-3

전화 031-984-2897

이용:07:00~17:30 - 입장마감 16:30 

휴무월요일

항상 만차이던 주차장이 한가하고

둘러싼 숲 위로 눈내린 후의 연한 햇살이 구름에 닿아

몽환적인 풍경을 보여줍니다. 

때마침 눈이오고 잦아지고 

눈덮힌 아름다운 장릉이 떠올라 급하게 왔습니다. 

다음백과:경기도 김포시 풍무동에 있는 장릉은 제16대 인조의 부모인 원종(1580~1619)과

인헌왕후(1578~1626) 구 씨를 모신 능이다.

원종은 선조의 다섯째 아들 정원군으로 태도가 신중하고 효성과 우애가 남달라

선조의 사랑을 많이 받았으며, 1604년 임진왜란 중 왕을 호종 1)했던 공으로

호성공신 2등에 봉해졌다.

(의병들은 역모가 의심된다고 처형당했고 

의주까지 선조를 보필한 내시를 포함한 모든 신하들은

큰 벼슬을 받았습니다. 명장 이순신도 선조의 시기를 

두려워해 마지막 전투에서 몸을 던졌습니다.)

 

왕을 뜻하는 '종'이라는

묘호를 갖고 있음에도 원종이라는 이름이 우리에게 낯선 까닭은

그가 생존 당시의 왕이 아니라 추존된 왕이기 때문이다.

원종은 사망할 때 정원군인 '군'의 신분이었으므로

양주 곡촌리(현재 남양주시 금곡동) 처갓집 선산에 초라하게 묻혀 있었다.

하지만 인조반정으로 정원군의 아들 능양군(인조)이 왕이 되자

이미 고인이 된 정원군은 정원대원군으로 높여졌고,

10년 후에 묘호가 원종으로 추존되었으며 묘도 원으로 추승되어 흥경원이라 했다.

이후 원종의 무덤은 현재의 자리인 김포시로 옮겨지면서 장릉이 되었다.

살아 있을 때보다 죽은 뒤에 남다른 대접을 받은 셈이다. 인헌왕후는 아들이 즉위하자

연주부부인이 되었고 궁호를 계운궁이라 했다.

1626년 49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나 김포 성산 언덕에

예장했다가 원종의 능인 현재 자리로 천장 했다.

매표소를 지나 장릉 문화역사관 앞의 운지버섯(구름버섯)

 

입구의 장릉 역사 문화관 

무인석 어깨에 도깨비 문양이 있습니다. 

성북동의 우리옛돌박물관을 방문하시면 우리나라의 많은 돌 유적을 

만나게 되는데 우리나라의 화강암은 이탈리아의 대리석보다 워낙 단단한데

이걸  조상들은 두부 다듬듯 다듬어 놓은걸 알게됩니다. 

화면으로 보는것이지만 시야가 시원하여  보는 편안함이 있습니다. 

우리나라는 일반 동사무소 서기조차 명필들이 많고 

박물관에 가서 옛 유적을 보면 필체가 너무 좋아 

감탄하게 되며 이런 나라를 그냥 바친 민비가 싫어지기도 합니다. 

삼국시대에 광활한 영토를 가진 고구려가 통일을 못한 것이 안타깝지만 

당시는 한 나라가 아니여 이해는 되지만 조선 인구의 30%가 노비였기에 

특권의식을 가지고 유지하려는 욕심이 화를 부른것 같습니다. 

무인석은 왕릉 능침공간에 설치한 석물로

무관 모습을 형상화한 것으로 반드시 왕릉에만 설치되어야 하고 

이장 시 묻고 가는데 개국 공신이나 조선후기로 화면서 왕권이 

쇠락해지면 권력 있는 대신들이 설치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용감한 도깨비 문양이 무인석 여러 곳에 조각되어 있습니다. 

릉이 주는 공간의 넉넉함과 릉에 심긴 소나무가 솔에 눈을 이고 

그윽하게 있는 ,  수려한  특징 있는  풍경이 주는 

한가한 여유가  좋습니다. 

 

여러 번  방문했어도 이번에 처음 발견한  가늘고 긴 백송입니다.

 

이런 설경이라뇨.

 

설경속의  조용한 재실의 모습

곤지池 못가에  주목이 품격 있게 심겨 있습니다. 

눈 속에 조선의 한옥이 어찌나 아름다운지요

화려하게 치장하지 않고 단아한 한옥과 마당의 모습

 

재실옆의 작은 연못은 연지라는 이름이 있는데

이곳은 저수지로만 불려 

제가 "곤지池"로 이름을 붙입니다. 

크기로 보아  너무 크고 잎이 몽실하지 않아

구상나무가 아닌 전나무입니다. 

 

 

참새목 박새가 눈이 와서 인지 상당히 많이 눈에 띕니다. 

산수유 

홍살문 

묵빛의 몽실한 겨울 숲의 풍경입니다.  왼쪽이 원종 오른쪽이 인현왕후입니다.

김포공항이 가까와서인지 개인 맑은 하늘에 여객기가 자주 날아다닙니다. 

비각

수복방 

정자각 앞의 편석 면이 작아 좋은 대접을 받지 못했음을 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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